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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by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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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autumnemond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는 이는 먼저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14장을 찬찬히 읽어보니 바울은 방언 자체를 특별하게 생각하지도(13:1, 8, 9), 그렇다고 필요 없는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12:10). 다만 교회의 각 지체로써 필요에 따라 주어지는 은사의 하나로 보는 것 같습니다(12:28, 30).

1. 사람의 영과 마음은 구분된 것이 사실이나, 어느 것이 더 고상하고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사랑을 가진 후에야 천사의 말과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3:1, 8). 영으로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나님에게 일대 일로 하는 것이 방언이고(14:2), 자신의 생각과 마음의 뜻을 담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하는 것이 사람의 말(여기서는 예언, 즉 하나님의 말을 대신하여 전달하는 것으로 표현, 14:3)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자는 자기 자신에게만 덕을 끼치고 후자는 교회 공동체에 덕을 끼치는 것이라고 합니다(14:4).

이로써 바울은 영의 기도와 마음의 기도를 분리하지만, 어떤 것을 더 낫다고 하지 않으며, 오히려 예언을 상대적으로 더 강조합니다(14:5). 그렇다고 방언을 무가치한 것으로 말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복잡한 설명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첫째로 당시 고린도교회에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방언을 내뱉는 것이 더 고상하고 신령한 것이라고 여기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존재했기 때문인 것 같고, 둘째로 교회 공동체의 덕과 유익, 이방인과 불신자, 초심자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는 것을 중시하는 바울의 성향 때문인 것 같습니다.

2. 공동체에게 덕

바울은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통역할 수 있기를 간구하도록 말합니다(14:13). 이는 다음 절에 내 영은 기도하지만 내 마음은 아무런 열매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14:14), 방언을 하는데도 마음에 아무런 열매가 없다는 것은 바꿔 말해서 기도하는 그 사람이 자신의 마음과 뜻을 담은 기도를 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래서 그 다음 절에는 영으로 기도하고, 또 깨친 마음으로도 기도하겠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방언을 통역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은사가 아닌 것으로 보이므로(12:10), 차라리 통역할 수 있기를 간구하라는 말은 현재 자신이(영과 마음이) 하는 기도의 의미를 앎으로써 보다 깊은 뜻을 가지고 진심의 기도할 것을 당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아가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예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특히 고린도 교회 사람들의 경우 방언을 함으로써 분명한 말을 하지 않음(14:9)으로 인해 그것이 무슨 뜻인지 전혀 알지 못해 자기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허공에 대고 하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바울은 공동체의 덕을 위해 만 마디의 방언을 하기보다 ‘깨친 마음’으로 다섯 마디의 말을 하기 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불신자나 초심자)을 가르치기 위하여 더욱 예언을 말하겠다고 합니다.

3. 개인에게 덕

이하는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바울은 결론적으로 예언을 열심히 구하되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막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14:39). 그리고 이를 위해 모든 것을 질서 있게 행하라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의 본질에는 일련의 모든 행위가 자신(영+마음)에게나 공동체에게나 유익과 덕이 되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가 존재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덕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본질을 깊이 새긴 가운데서 영의 일대 일 기도인 방언 말하기를 힘쓰되, 마음으로는 깊은 뜻을 다해 진심으로 기도에 집중해야 합니다. 바울은 공동체의 덕에 초점을 맞춰 글을 끝맺지만, 각 개인의 영과 마음에 집중하자면 영의 말 하기를 힘쓸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위에서 나타난 여러 주의사항들을 무시한다면 이것은 오히려 안하는 것만 못하는, 나아가 자신과 공동체에 악덕을 끼치는 것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주의사항이라 함은 방언을 말하되 아무런 마음과 뜻 없이 반복적으로 기도하는 것,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신령한 방언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일반적 기도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은연중에 생각하는 것입니다.

방언 자체에 초점을 맞춰 결론을 맺자면 영의 방언은 중요한 것이고, 금해서는 안 되며, 일반적으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런 마음과 뜻 없이 기도할 바에는 그 의미를 알게 해달라고 간구하되, 그 본질에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하는 마음이 존재해야 합니다. 개인(영+마음)의 덕을 위해서라면 영의 말에 집중할 필요가 있으며 앞선 주의사항들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오늘 예배 중에 저도 모르게 방언이 나왔습니다. 수 년간 방언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았었고 그 이전에 했던 방언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거의 다 아무런 의미 없는 행위였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방언을 하면서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과 상관 없는 삶을 살면서 이 땅의 것과 어우러지고 있는 제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고, 둘째로 도저히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내 영혼이 고통을 참다 못해 하소연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셋째로는 언제까지 이것을 반복하면서 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 돌아가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있겠으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제대로 내려놓기 위해서는 그 무거운 짐의 무게를 한계치까지 명확하게 인지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져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습니다. 죄인이 죄인됨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이상 대속에 포함되어 자신의 생각과 마음, 행동을 전적으로 돌리는 회심의 과정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은혜 안에서 그 자신만이 해낼 수 있는 일입니다.

저는 드라마틱한 회심의 사건을 절대 믿지 않습니다. 저뿐 아니라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그분께로 조금씩 나아갑니다. 물론 회심하기로 결단하는 시점은 존재하겠지만 자신의 한계와 나약함으로 인해 수많은 좌절과 고통,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단 번에 그분께로 돌아선다는 것은 그 만큼 쉽게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드라마틱한 사건은 절대 없습니다. 몇 년 전에는 그러한 사건이 있기를 간구했으나 이제는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특별한 무언가를 기다리기 보다는 날마다 나 자신과 부딛히며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조금씩 나아가려고 합니다. 어느 시점까지는 이러한 고통의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하겠지만 내 영혼에게 방언으로 기도할 기회를 주고, 그와 어루어져 내 마음과 뜻도 진지하게 집중하는 것을 더 이상 금하지 않으며, 그에 맞는 감동에 따라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을 반복한다면 어느 새 굳건하게 돌아서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리라고 확신합니다.


제 어머니는 방언으로 온 마음과 뜻을 다해 기도를 많이 하십니다. 해장국을 만들면서도 입술은 방언을 말하고 마음과 뜻은 하늘을 향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말씀드렸던 두 분의 암 환자 중 한 분이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는 큰 시험에 들었습니다. 그 동안 자신이 생각하던 믿음의 의미가 깨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선한 의도와 함께 병든 자의 치유를 간구하면 무조건 낫게 된다고 믿는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분이 돌아가신 것은 그 분에게 좋은 일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저는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그 분을 위해 방언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 안에서의 평온한 죽음을 간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실제로 그 분은 굉장히 고통스러워야 할 죽음의 그 순간에 기도실에서 기도하다가 행복한 표정으로 정신이 떠나갔습니다. 그 분과 하나님에게는 좋은 일이었겠으나, 중간에 기도하던 어머니는 굉장한 시험에 들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내 생각의 기도가 아닌 하나님이 원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맞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방언을 하는 것이 그 이유고, 내가 방언을 전부 알아듣지 못하는 것 또한 그 이유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종으로써 그 분이 원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맞다고.

다행이도 어머니는 납득하고 시험든 마음이 풀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금까지도 보면 실제로 그런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순수하다 보니 일어난 해프닝? 정도로 생각합니다. 지금은 더욱 방언으로 하나님이 원하는 기도에 힘쓰고 있습니다.


굉장히 글이 길어졌어요 ㅠ 쓰다보니 끝이 없네요. 그래도 말할 사람이 목사님밖에 없어 이렇게 씁니다. 귀찮으시더라도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나머지 하루 행복하세요^^




re.

두 번 읽었어. 근데 내가 어떤 답을 말을 해야할까? 이미 대성이 너가 자르일고 있는 것 같은데.

1. 방언의 첫 번째 의의는 잃어버린 말씀을 찾았다는 것(말을 흩어버려 멸망시키신 바벨탑사건)

2. 그 사건으로 인해 말의 해체 및 기쁜말씀(소식), 곧 복음이 세계로 전파되도록 함

3. 바울은 할 수 있다면 방언하는 게 좋다고 했고, 권면한 적 있잖아. 교회와 개인의 밸런스를 유지하는데 해가 되지 않도록 한다면 방언은 좋지.

그런데 방언하는 사람 가운데 엉뚱한 분들이 많다는 것도 사실이야.

기도는 하나님 뜻이 이뤄지는 거지? 요15:7. 내 느낌에 병애서 회복될 수 있겠다 싶어서 선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지만 결과는 정 반대일 수 있어. 사실 그런 경우가 되게 많고.

그런데 생사는 하나님에게 있고, 설령 병자가 회복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죽음이 인간의 운명이잖아. 병이 낫는 것만이 하나님의 응답은 아니지? 마음 아픈거야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깨닫는 게 인간이잖아.

하나님은 언제나 한걸음씩 인도하셔. 청사진 제시하고 상황 이해시켜서 움직이게 하지 않으시더라고. 그래야 믿음이니까. 믿을 수 없는 중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대성아, 잘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