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이라는 정치인이, 변호사가, 운동가가 죽었다.
오늘로 2주하고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지금은 공교롭게도 노회찬이 죽은지 꼭 이 년 하고도 하루가 지나는 시점이다.
같은 듯 다른 이 두 인물의 마지막을 보며, 이 땅을 살아가는 깨어있는 자들은 적지 않은 고뇌 속에 잠기리라.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리는 어떤 정치적 입장을 취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는 모두 쓰레기다.
나는 노회찬을 직접 알지는 못한다.
그나마 알고 있는 행적의 파편들, 영상물로 보던 그의 언행 등을 통해 형성된 개인적인 존경심에 기반하여 이 글을 기록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망망대해와 같다.
수없이 많이 보아 왔던 것처럼, 이 바다에는 사실
과 진실
이란 이름의 쌍둥이 섬이 서로 마주보며 떠 있다.
나는 노회찬이 사회정의를 갈망하는 사람
이었다고 믿는다.
모든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는 불변의 진리 속에서, 언제나 진심으로 정의를 갈망했던 한 사람이 직면한 부정의
는
자신에게 있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인 것이다.
그가 직접 진술했듯이, 5천만원에 가까운 정치자금을 불법적으로 받은 것은 사실인 듯 하다. 맥락과 진의가 어떻든 간에 이러한 사실은 서서히 그의 목을 조르다 마침내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만들었다. 둘 중 하나의 선택을 내적으로 강요받으며 그는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사실이 조용히 뭍혀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인간적 소망을 잠시 가져보지 않았을까.
첫 번째 선택지는 정의를 갈망하던 그의 성정에 그나마 가까운 종류의 것으로, 정치자금 수수라는 이 사실을 액면 그대로 시인하고 정치인으로써의 모든 커리어를 불명예 속에 종결짓는 것이다.
그가 돈에 미쳐서 수많은 달콤한 유혹 중 하나를 뿌리치지 못했던 것인지, 그간의 정치적 압박과 자금난 속에서 돈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몰렸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 큰 생각 없이 선의로 수용했던 것인지 나는 진실을 잘 알지 못하나, 현재 대한민국 법률상 범죄로 규정된 방식으로 돈을 받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경중에 관계없이 돈에 관한 위법을 저지른 비도덕한 정치인은 더 이상 정치가 불가능하다(그런데 저들은 왜이렇게 뻔뻔할까).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양심을 따라 위법사실을 시인하고 정치계를 떠나는 이 선택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정치를 그만두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이 사실을 둘러싸고 그를 범죄자라고 비난하는 사람, 나아가 진보계 전체를 싸잡아 욕하는 사람, 반대로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를 대며 옹호하는 사람, 일반화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 등 수많은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이 자명했다. 노회찬은 욕을 하던 옹호를 하던 그 모든 것들이 싫었을 것이다. 그리고 저 뻔뻔한 사람들과 자신을 동률로 보는 시각이 생겨나는 것도 도저히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과 비교하여 정치자금으로써 5천만원은 얼마만큼의 무게를 가질 것인가.
두 번째 선택지로는 많은 범법정치인들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했던 행동으로,
자신의 위법사실을 부인하고 오랜 시간 법정공방에 들어가는 것이다.
언제나 법은 한 발 느리고, 집행과정은 더더욱 오래 걸리며 특히 사회적 특권이 있는 정치인은 그 속도를 더 느리게 할 수도 있다.
그런 이점을 십분 활용하여 사회, 정치적 처벌을 유예하고 갈망하던 정의
를 계속해서 부르짖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정의의 의미가 이미 빛 바래버릴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사회에 존재하는 많은 철면피들과는 다르게 노회찬에게 있어서
이 선택지만큼 자신을 자신과 극단적으로 분리시키는 비참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범법을 시인하거나 부인하거나,
외부적 비난을 감수하거나 내면으로부터의 붕괴를 경험하거나,
이 두 가지 외에 다른 선택지가 그에게 존재했을까?
…
자살은 선택지가 아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치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자살이란 제 3의 선택은 앞선 두 가지에 따른 딜레마보다도 더 가볍게 느껴졌나 보다.
언제나 정의를 갈망하고 약자를 위해 살고 싶었던 사람.
그러나 완벽하지 못했던 사람.
마침내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 자살은 도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그를 비난하지 못하겠다. 그저 답답하고 또 답답하고.. 먹먹할 뿐이다.
김어준의 멘트처럼,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은 노회찬 자신뿐만 아니라 그를 사랑하고 지지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아닐지.
도대체 누구 탓을 하랴. 지옥같은 지하에 다다르기까지 홀로 고민하던 그의 곁에 다가와 그저 같이 있어주는 한 사람이 있었다면 혹시.. 혹시나 어땠을까?
마무리가 어렵다. 이만 줄인다.
Written on July 24th, 2020 by namu